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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사랑그첫걸음, 재미 솔솔 흙 내음 폴폴. 홍성용봉산체험마을
용봉산 전경
  • 관광지 : 용봉산소개
  • 마을명 : 충남 홍성 용봉산체험마을
  • 유형 : 산 / 계곡 / 폭포 / 동굴
마을관광지도보기

소개

충청지역 대부분의 산과 들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평탄하고 유순하다. 이는 이 지역 평야가 대부분 침식평야라 곳곳에 잔구가 많이 있는 준평원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밋밋한 충청남도 땅에 그래도 산다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금북정맥이다. 금북정맥은 가지를 뻗어 아기자기한 바위산인 용봉산을 만들었다. 용봉산은 서원산에서 수덕산에 이르는 산지능선의 동측에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6.5km의 길이와 2km의 폭으로 뻗어 있다.

용봉산은 381m의 높이지만 홍성 사람들에게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다. 게다가 바윗길이 험하고 도처에 기암절벽이 있으며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시간이 없어 아쉬움만 남기는 산이기도 하다. 또한 용봉산은 산행이 즐거운 곳이다. 접근하기 쉽게 도로가 사방팔방으로 잘 발달돼 있고, 조망 좋은 암릉도 재미있는 데다가, 산행 후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 수 있는 온천장도 가깝기 때문이다. 용봉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인 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산 남쪽 중턱과 서편 산록에 완만한 경사가 길게 펼쳐지며, 자생 소나무 군락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악기봉, 장군바위, 병풍바위 등 기암의 절경이 펼쳐진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일요일이나 공휴일만 되면 평균 7백명이나 8백명 정도는 항상 왔다가 가는데 이곳 정상을 지날때는 마치 금강산 만물상 축소판이라고도 또는 소금강산 이라고 평가를 하고 간다. 이 용봉산의 봉우리마다 수많은 산 정기가 뻗혀 있기에 이 산을 중심 삼고 동방으로 5km 지점에 최영장군, 성삼문 생가가 접해있다. 지역주민들은 이 용봉산을 더욱더 위대한 산이라 칭하고 세인들에게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용봉산 가이드 / 저자 : 박성수

아! 위대한 용봉산

세상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창조성을 인간들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용봉산, 수많은 용들이 쌓여져서 봉황새의 몸체를 이루어 용의 머리들 같기도 하고 봉의 머리들 같기도 하여 용봉산인가봐!

남방 등산코스 입구에서 북방으로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시간이 없어 아쉬움만 남기는 용봉산. 그 수많은 기암 절경 절벽들 그 절경들 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용봉사 하나님의 무한사랑 무한 자비심을 이어받은 대자 대비심을 인간 세상에 교시하시고 계시는 부처님들, 참으로 훌륭한 조화였지요. 남방 입구 미륵사 서북방에 자리잡고 동향한 8m의 가상 문화재87호의 석불은 그 누가 언제 탄생시켰으며, 북방에 자리잡고 남향한 6m의 입상보물 제 355호 마애석불 그도 또한 누가 언제 탄생 시켰던가! 저 산 고지와 이산 등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성터는 그 무슨 사연을 안고 있는지..

전언(傳言)에 의하면 여기가 최영 장군의 전쟁 놀이터라고도 하고 흑자는 백제 시대의 군사 요지라고도 하네. 연하여 홍성읍 동방에 자리잡고 서 있는 김좌진장군의 동상은 알고 보니 바로 이 용봉산 제일 고지를 가르키고 있구나! 그는 또한 무슨 사연인가! 산아! 산아! 용봉산아! 봉우리마다 괴암 절경 그대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는고!! 천만년의 한국의 희비역사를 기억하고 있겠지. 말좀 해다오. 수많은 기암괴석들아 너들도 보았고 알고 있겠지 왜 말이없느냐!!

현대에 와서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일요일이나 공휴일만 되면 평균 7백명이나 8백명 정도는 항상 왔다가 가는데 이곳 정상을 지날때는 마치 금강산 만물상 축소판이라고도 또는 소금강산 이라고 평가를 하고 가는 것이다. 이 용봉산의 봉우리마다 수많은 산 정기가 뻗혀 있기에 이 산을 중심 삼고 동방으로 5km지점에 최영장군 생가에 성삼문 생가가 접해있고,서방으로 12km지점에 김좌진장군 생가가, 북방으로 5km지점에 윤봉길의사의 생가가 있고, 남방으로 7km지점엔 한용운선생 생가가 있어, 이 용봉산을 필자는 더욱더 위대한 산이라 칭하고 세인들에게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연하여 근대사에 상처의 사연도 들어본다.

조국이 일제의 압박에 시달리던 그때 용봉산도 그들의 손에 시달리며 파괴되기도 했다. 그들은 본산에 금을 켄 다는 구실로 여기저기에 수많은 구멍들을 뚫어 놓았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이 산의 정기를 파괴시키기 위하여 작업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어서 산으 ㅣ제일고지 동방 중턱에 빈 절터가 있는데 그 곳에서 일본인들은 수많은 유물들을 발굴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한씨 노인의 말이었다. 그리고 또 이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동족 상잔 6.25사변때 형부소 수감자 두추럭, 셋추럭 실어다가 용봉사 입구 좌편 산곡에서 총살형으로 집행 하였다네. 그때 그 산곡은 핏물로 여흘을 이루었다네 그때 그 시신 더미 속에서 유일하게 장씨성을 가진 한 사람이 살아나 도망을 갔었으나 1년후에 사망 하였다네. 나는 그곳을 유심히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벌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우거져 있는 나무들에게 물어 보았다. 아니! 용봉산에게도 물어 보았다. 그때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공포의 심정은 그 어떠 했더냐?!! 그들 영혼들의 애화는 무엇이였으며, 또한 어떠했더냐!! 말 좀 해다오!!! 그때의 이 불행한 인간 처사를 하나님께서나 용봉사에 정좌하신 부처님들도 함게 슬퍼 울었으리라 믿는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앞으로의 세월에는 6.25와 같은 동족 상잔의 비극은 절대로 없게 하여 달라고 기원했다.

현세에 와서는 용봉산 정기를 한데 모아 흘러내리는 동방 산곡 입구에 충남의 자랑인 청년지도자 교육장인 청석 수련원이 우뚝 솟아있어 불의와 모순을 추방하고 정의의 용사들로 길러내기에 여염이 없이 바쁘다. 필자는 용봉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하산하였소.

나는 용봉산을 이렇게 안내합니다.

나는 1989년 12월부터 홍성군 홍북면 사무소 소속으로 용봉산 산불 감시원으로 채용되어 근무를 하면서 본산을 답사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1회를 답사 해본 결과, 외 이렇게 아름답고 위엄이 있는 산이 이 인간 세상에 별로 이름이 널리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며 눈물이 겹도록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수 차례 답사와 탐방을 해본 결과 제목은 [아! 위대한 용봉산] 이란 답사기사를 써서 현재까지 600여매 등산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던 중 1993년 2월에 홍성군 산림과 소속으로 용봉산 휴양림 관리원으로 승진 임명되어 오던중, 1995년 11월 27자 주간홍성 지방지에 필자의 아! 위대한 용봉산 이란 기사와 필자인 저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그런후 저는 더욱더 열심히 긍지를 갖고 관리원 직무를 수행해오던 중, 1996년 12월에 홍성 군수님으로부터 표창패를 수여 받았다. 그후 저는 더욱더 잘해 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근무해왔다.

지금으로부터 3년전인 1995년부터 현재까지는 더욱더 구체적으로 7개 조항을 짜서 조목조목 안내하고 있다. 이 7개 조항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널리널리 알려져서, 이 용봉산 자연 휴양림이 국내 제일의 유명산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용봉산 용봉사 계곡 입구에서부터 북방으로 500m들어가면 용봉산 휴양림 관리초소(구초소)가 차도 좌측에 올려져 있다. 관리원은 작업시와 순산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이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중 등산객들이 평균 30인 이상 정도면 그룹대표자와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이곳 휴양림에 처음 오셨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선생님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시면 여기 초소에 올라오셔서 용봉산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과 경치소개를 좀 듣고 가십시오." 한다. 그러면 그분들은 모두가 올라와서 그럼 꼭 들어보고 가겠다고 한다. 그러면 저는 먼저 "우리 용봉산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저가 말하는 것과 손짓하는것을 잘 보셔야 됩니다." 관심 많은 등산객들은 더러 수첩을 끄집어 내어 기록도 하십니다.

첫번째로 보십시오 저기 북방으로 절경 바위산이 있지요 저것이 용봉사 뒷산 병붕바위입니다. 병풍을 12폭 짜리 이상 3겹으로 치고 그 남방 저기 신랑신부바위가 결혼식을 하고 있는데, 저 결혼식이 한국식 재래식 결혼식으로 서동부서로 위치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 남방 오똑한 고양이형 호랑이 바위가 남향하고 인간 결혼식을 수호하고 있는데, 그 남방저기 거북바위 한 쌍이 기어올라가지요, 거북1쌍이 인간 결혼식을 축하하러 가는데 맨 먼저 올라간 거북이가 숫 놈인데, 올라가서 보니 인간 결혼식장에 호랑이가 수호하고 있으니, 그 숫거북이가 머리를 왼편으로 돌려 밑에서 올라오고 있는 암 거북이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니 암 거북이가 그 말을 듣고 자세가 어때요 하니 등산객들이 바짝 움츠려 가지고 올라가는데요 한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초소 앞산 경치 소개입니다.

두 번째로 저기들 보십시오 소개한 앞산이 낮아지고 또 높아지는 경계지점이 있습니다. 그 경계지점에서부터 병풍바위로 용바위로 악귀봉으로 360고지로 해서 360도로 저기 남방정상까지 대부분 산성이 다 있습니다. 그 산성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여기가 백제시대 때 군사요지라고, 또한 최영장군이 이곳에서 탄생하셨으니 전쟁 준비하기 위해서 쌓았다는 두가지 평가를 합니다. 산성을 답사해보면 대부분이 오랜 세월로 인해 폭6m,8m로 붕괴되어 있습니다. 또한 중간 중간 절벽 같은 데는 없고 적군들이 올라 올만한곳에는 다들 ?맙span>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360고지가 닿습니다. 여기가 경치 중심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서서 머리만 360도로 돌려보면 용봉산의 모든 경치가 시야에 다들어오는것 같지요 여기서 남방으로 보면 최고봉 381m 고지가 보이는데 그 북방 옆에는 묘2기가 시야에 들어오고 그 고지에서 서방으로 바라보면 서해와 안면도가 시계에 들어오지요 그리고 고지 밑에 묘지에서 동남방으로 산등성이 등산로로 300여m 끝에 8각정이 지어져 있는데 여기가 최영장군 활터라고 하는데 먼 옛날에는 주위에 산성이 쌓여 있고 평평한 활터였는데 오랜 세월로 인해서 거의 붕괴되고 서편에 만 약 10m 성터가 남아 이곳의 한 토막 전설을 말해주고 있다. 전언에 의하면 최영장군이 이 활터에서 동남방 5km지점 노은리 닭재산에 닭 한 마리를 묶어 달아놓고 활시위를 하는데 자기의 애마에게 내가 닭에게 화살을 꽂을 터인데 말 너가 급히 달려가서 화살이 닭에 꽂히기 직전에 받아 물고 돌아와야 살려준다가 했다. 그러자 애마가 꼬리를 벗고 준비하고 있을 적에 장군은 화살을 쏘았더니 애마가 달려갔다가 그냥 돌아오기에 장군은 약속대로 애마의 목을 쳐서 그 활터에서 하산하여 하산만을 차도 위에 묻어 놓아(말 무덤)두었다가, 후일에 장군께서 말이 화살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화살을 물고오지 못했으니 화살은 뒤늦게 도착되어 닭을 맞혀 죽였기에 그 곳을 닭 제산이라고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고 사랑하던 장군의 애마는 너무나 억울하게 죽었기에 그말 무덤을 개장하여 홍성읍에서 동방 1km지점 논들 가운데 큰 무덤으로 정중히 이장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그 활터 서 남방 계곡에는 옛 절터가 있는데 그 절터에서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수많은 유물들을 발굴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에는 천 여명의 스님들이 있었기에 천승골 이라고도 하며 조석으로 수많은 쌀을 씻었기에 싸라기가 떠내려가는 거리가 1km 이상이나 되어 이름을 싸라기내 라고 지금껏 불러지고 있으며 그 싸라기 때문에 쥐가 많이 생겨나서 하산마을 앞산이 쥐산이라 하여 지금까지 불러오고 있다. 경치 중심지 360고지에서 북방으로 400m정도 가면 악귀봉 두 봉우리가 있는데 여기가 최고 절경이라고 하며 두봉 모두가 서방으로 100m정도 뻗은 산등성이에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쌓여 있어 명칭그대로 악할악(惡)자와 정중히 기도와 제사를 지내면 일년 신수대통 여의한다고 생각하고 매년 새해 1월초에는 전국 각처에서 산악회원들이 이곳에 몰려 와서 산제를 지내고 가는곳이다. 그 두 봉 악귀봉 중 북방에 있는 봉우리는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불화(火)자와 불꽃염자를 써서 화염바위라고 또는 연꽃 바위라고도 불러지고 있으며 그 남방 봉 정상에는 말 모양의 바위가 북향하여서 있으니 이곳에 온 등산객들은 모두가 기암이라 하고 지나간다. 여기서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오다가 보면 십자형 갈림길 등산로가 있는데 같은 방향으로(북방) 계속가면 에산군 덕산면 온천지 까지 가는 등산로가 되며 서방으로 하산 하면 수덕사로 갈 수 있고 동방으로 내려오다 다시 오르면 보물 제355호로 지정된 마애석불 광장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가 최고 명당으로 영지 또한 천궁으로 산신령님이 하늘과 땅에 접속한다는 곳이다. 이 명당 밑에 자리잡은 용봉사 옛 이름은 영봉사 신령영(靈)자와 받들봉(奉)자를 써서 영봉산 밑에 영봉사 그래서 옛 사람들은 새해 정초만 되면 이곳 용봉사에 와서 부적을 써서 사용하면 영험이 빠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줄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명당 마애석불 광장 좌측 산등성이 등산로를 따라 약 400m 올라가면 악귀봉에서 내려오는 산등성이 등산로와 합해져서 말의 목살과 같이 가느다란 지점이 있는데(용바위 오르기 직전) 여기에다 일제 시대 일인들이 이 용봉산에는 조선사람들이 3년 먹고 살수 있는 금이 들어 있다는 핑계(이유)를 하고 이 말의 목 부분(용의 목)을 동서로 뚫어서 관통을 내어 금광업을 시작하였다니 필자는 일인들이 이 용봉산(소금강산)의 산 정기를 파괴시키기 위한 행위였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곳뿐만 아니라 필자가 첫 번째 소개 해 드린 란에 병풍바위와 신랑신부 바위 사이에 등산로 변에도 두 곳이나 옛날 우물을 파내려 가는 식으로 7m깊이로 파해 친 곳이 있고 그 외도 이 용봉산 전역에 걸쳐 여기 저기 파해 친 곳이 많이 있다. 등사로 옆 위험한 곳에는 철망을 쳐놓았다.

네 번째로는 이 용봉산을 팔봉산이라고도 했으니 제일 큰 봉우리들만 헤어서 팔봉이 라고 하여 이 팔봉을 가각 답사 해보면 저마다 독특한 기백을 과시하고 있고 산 정기를 뿜고 있다는 감상이 나온다. 그래서 팔봉을 중심 삼고 동서남북에 위대한 인물들이 탄생하셨으니 여기서 동남방으로 약 5km 지점인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에서 서기1316년에 최영 장군이 탄생하기고 그후 102년째 김좌진 장군이 탄생하셨고 북방 4km지점 예산군 덕산면에 선 윤봉길 의사가 탄생하셨고 남방 7km지점 홍성군 결성면에 선 한용운 선생님이 탄생하셨으며, 이렇게 장군 충신 열사들이 이 용봉산 산 정기를 받아서 탄생하셨다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다섯번째로 고려말 이조 초에 이서 란 영상이 본산을 답사해보고 보통산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곳 용봉사에 와서 오래 머무르며 시회도 갖고 연희석도 베풀었다고 하는 기사고 홍주문화 5집에 기재 되어있다.

여섯번째로 송악사 주변에 대한 소개인데 여기서 서방 계곡 등산로로 가다가 중간 지점쯤에서 유난히 좌측계곡 등산로가 한곳이 있는데 그리로 약 400m 들어가면 길 40m-50m, 높이 2m 정도의 석축이 쌓여져 있고 그 위로는 평평한 절터가 있고 주춧돌도 보이는데 이곳이 송악사 옛 절터인데 이 절터위로 두 줄기 바위산 등성이가 쭉 뻗어 올라가 있는데, 이 바위산등성이를 답사해보면 절터에서 우측으로 13명 정도 좌측으로 12명정도 사람들 모양의 바위들이 2열 종대로 쭉 정상까지 늘어서 있는데 그중 우측 줄 중간중간 3명 정도는 특별히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는 모양이고 좌측 줄에도 또한 동일한 형상들이다.

그래서 그곳을 장군 바위들이 있는 곳이라고 일컷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송악사 절터 쥐위엔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있고, 또한 높은 바위산 봉우리들이 인근 주위에 늘어서 있었으니 저 유명한 시인 이수광 시(詩) 몇 구절을 여기에 옮겨 보려한다.

(홍양록 참고)
절세 충신 최영이 억울하게 참형을 당하니
쓰던 투구와 갑옷은 좀먹어 이끼만 끼었구나.
달은 송악사 너머로 늙어 가는데
깍아 세운 듯한 팔봉은 하늘을 꽂고 있내
금강산 일만이천봉도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이용봉산을 찬미했다.

일곱 번째로 용봉사 서방 평양조씨 공조참판묘소에 대하여, 공조참판이라면 현재는 상공부 차관 격이었는데, 그분들이 이용할 묘지를 물색하던 차에 현지에 와서보니 조그마한 절이 지어져 있고 좌우금강산이 둘러쳐져 있으니 이곳이 묘지로 적정하다고 인정하여 절을 동편 현재 위치로, 그들의 세도로 임의 데로 옮기고 정리하여 서기 1895년도에 매장 설치하였다고 했다. 옛날 전언에 의하면 명당 절터에는 명당 묘터가 없다고 했으니 그에 일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상으로 여러분들께서 이 용봉산을 등산하시는데 많은 참고가 되시길 바라면서 이만 인사드립니다.

사진 3개중 왼쪽부터 용봉산에서 본 마을, 용봉산 중턱의 쉼터, 등산객이 쌓은 돌탑

오시는길

버스로 오실 경우

서울, 대전에서 홍성까지 오시는 시외버스는 자주 다닌다.

열차로 오실 경우

장항선 홍성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홍성에서 용봉산까지 1일 10회(06:45~19:35, 1시간 간격) 운행하는 시내버스(041-632-1371~3) 이용. [15분 소요]

자가용으로 오실 경우

  • 서울 방면에서는 경부고속도로로 천안 나들목을 빠져나와 21번 국도를 따라 아산과 예산을 지나 홍성까지 간다. 혹은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 해미나들목에서 나와 45번 국도를 타고 덕산까지 간 뒤, 609번 지방도로로 홍성 방향 으로 진입한다.
  • 경상도쪽에서는 대전에서 공주와 청양을 거쳐 홍성으로, 전라도쪽에서는 호남고속도로로 논산교차로에서 부여와 청양을 거쳐 홍성으로 진입한다. 홍성군에서 609번 지방도로를 따라 3km 정도 가면 용봉초등학교로 좌회전하는 이정표를 만난다.